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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랑방식
19+ 완결 10+
그들의 사랑방식 가람 /“가슴 만져주세요.” “저 괜찮아요. 만져주세요.” [미리보기]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박 선배였다. “왔구나, 왔어. 하하하하하....” 박 선배는 나를 한참 동안이나 끌어안으면서 반가워했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에 햇살은 따사로웠고, 가로변의 진달래가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박 선배는 운전을 하면서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주로 자신의 사업에 관한 얘기였다. “그 아이템이 대박을 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일대 반전이 일어난 거지. 정말 사람 일 아무도 몰라.” 박 선배의 사업은 여러 번의 부침(浮沈)을 겪고 나서 이제는 제법 탄탄한 궤도에 오른 것 같았다. “여자는 없어요?” 박 선배가 늘 혼자였던 것이 기억이 나서 내가 물었다. “야..야...난 몇 년간 전쟁터에 있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전쟁하면서 여자 사귀는 놈도 있냐?”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을 것이다. 박 선배는 늘 그랬으니까 말이다. 뭔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던 박 선배였다. “그런데 말야....크크..” 박 선배는 나를 흘끗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박 선배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서울 강남의 한 번화가였다. 밤이 내린 거리는 이미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와 보는 거리지만 그다지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늘씬하게 뻗어 내린 다리를 휘저으며 걸어 다니는 여자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난 그 여자들에게서 왜 아련한 슬픔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는지 모르겠다. “어디 가는 거예요?” “사실은 내가 말야....만나는 여자가 있거든...크크” “네? 하하하...” “환영식 겸해서 같이 만나지 뭐...” “하하..네.” 써니 힐(Sunny Hill) 선배가 나를 데리고 간 건물의 정면에 있는 로고였다. 산뜻하고 모던한 영문글자체였다. 써니 힐이라는 로고 외에는 그 건물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그 어떤 다른 정보도 보이지 않았다. 열려진 입구 안쪽으로 복도가 들여다보였고, 은은한 조명이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려, 여기야.” 나는 그 건물이 디자인 회사 쯤 되는 것이라고 추측을 하면서 선배를 따라 들어갔다. 레몬을 연상시키는 조명이었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벽면에 양각되어 있는 그림들에서 예술적 터치가 묻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배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그 아름다운 건물 ‘써니 힐’의 내부로 발을 내딛었다. “어서 오십쇼.” 말끔하게 차려 입은 한 청년이 냉큼 달려오더니 단정하게 인사를 했다. “음...잘 있었지?” 선배의 목소리 톤에는 약간의 거만한 느낌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써니 힐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써니 힐이라는 그 모던한 건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청년은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긴급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 분도 채 못 되어 어떤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박 선배에게 다가왔다. “어머! 어머! 박 사장님. 오늘은 왜 연락도 안 주시고 이렇게 왕림하셨어요?” “공항에서 오는 길이야.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후배야. 인사해.” “어머머, 세상에...어디에다가 이렇게 멋있는 후배님을 숨겨 두셨데...완전 브래드피트시네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실장 윤아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써니 힐’은 강남의 고급 룸 살롱이었고, 실장 윤아는 써니 힐의 마담이었다.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정 진우라고 합니다.” 나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인사를 했다. 박 선배가 나를 보고 눈을 찡긋 한다.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방음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던 탓인지 다른 룸에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가끔씩 지나쳐가는 웨이터들도 단정한 몸짓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다. 우리가 안내된 방은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룸살롱에 대한 인식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룸 안의 인테리어는 차분하고 은은하기까지 했다. “저희 써니 힐은 그야말로 고품격을 추구합니다. 다른 업소에서 느꼈던 천박한 분위기를 우리 써니 힐에서는 절대로 느끼실 수 없을 겁니다. 호호호...” 따라 들어온 실장 윤아가 나에게 써니 힐에 대해서 자랑 섞인 설명을 해 주었다. “어이, 쓸 데 없는 소리 그만 하고 빨리 셋팅해. 우리 바뻐.” “어머머..박 사장님 정말...좀 우아하게 살자구요. 그리고 후배님 앞에서 저 가오 좀 세워주시면 안 돼요? 흥!..” 나는 박 선배와 실장 윤아가 티격태격하면서 하는 대화를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래 된 친구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럼, 박 사장님은 역시 미미?” “당연하지.” “오케이,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실장 윤아가 나가자 실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만큼 윤아의 목소리는 하이톤으로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고품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배의 여자가....미민가보죠?”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너도 한 번 봐봐라. 죽이는 애다.” 나는 결국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려 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곧바로 웨이터 둘이 들어와서 술을 세팅했다. 웨이터들은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고, 그들의 동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고급 양주병이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인다. “꺅! 오빠!” 미미라는 여자애가 들어와서 박 선배에게 안기다시피 하면서 앉았다. 실장 윤아의 고품격론은 미미의 화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전혀 천박하지 않은 화장이었다. 오히려 화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미의 얼굴은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런데.......고급 룸살롱에서 일하는 아가씨치고는 키가 작다는 느낌을 주었고, 몸매도 그다지 특 에이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 친동생 같은 후배야. 인사해.” “어머, 안녕하세요. 저 미미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모. 근데 완전 영화배우 같으세요.” “그래서? 내 후배랑 한 번 하고 싶으냐?” “악! 오빠. 전 오빠만의 소녀 춘향인 거 모르세욧?” 두 사람의 대화는 정겨웠고 나름 재미있었다. 미미라는 여자애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박 선배도 즐겁게 맞장구를 쳤다. 고품격 ‘써니 힐’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초이스 타임이었다. 실장 윤아가 데리고 들어온 10여 명의 아가씨들은 마치 왕에게 간택받기를 기다리는 궁녀들처럼 내 앞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그 짧은 시간에 최대한 어필하기 위해서 서 있었다. 나는 룸살롱을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한국에 있을 때 룸살롱에 갈 기회도 별로 없었거니와, 꼭 가야할 자리가 아니면 되도록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 했었다. 불가피하게 가야할 경우에는 참으로 곤혹스러웠던 것 같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 붙어 앉아서 술의 힘을 빌어 가까워지기를 강요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초이스 타임은 나에게 가장 힘겨운 시간이었다. 내가 한 명을 선택하면 나머지 다수는 쓸쓸하게 발길을 돌려 대기실로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 한 명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마음을 졸이며 그 자세로 계속 서 있어야 한다. 초이스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써니 힐 최고의 걸들입니다. 아니 강남 최고의 걸들이지요.” 실장 윤아는 걸이라는 말을 할 때 혀를 과장되게 굴렸다. 내 시야에 아름다운 여자들의 얼굴과 몸매가 하나하나 지나갔다. 정말 너무나도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이었다. 도대체 누굴 선택한단 말인가. 그런데.....그런데.......내 시야에 지나쳐가는 얼굴들 중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얼굴 표정이 굳어있는 여자애가 한 명 들어왔다. 저 여자애는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음...저기...오른쪽에서 세 번째 아가씨로 할게요.” 나는 그 여자애를 지목했다. “탁월한 선택이시네요. 진우씨하고 정말 어울리는 컨셉의 걸입니다.” 그 여자애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여전히 표정이 밝지 못하다. 박 선배와 미미는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여전히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거기 벨을 눌러 주세요. 바로 달려 옵니다.“ 실장 윤아가 이렇게 말하고 나갔을 때 그 여자애는 이미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리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여자애는 자기를 리수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물론 가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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