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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로맨스 완결 500+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제베나 /완연한 어른의 표상을 한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이연의 숨결 한 모금, 시선 한 줌을 앗아갔다. 마땅히 받아낼 것을 받아내듯이. 그건 먹이사슬 꼭대기를 차지한 이의 관조이자 여유였다. 여전히 미욱한 자신과 달리 온전한 어른으로 자란 그를 보자 기분이 묘해졌다. 권채환이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었다. “오랜만이다, 연아.” 오 년 만에 듣는 애칭은 반갑기보다 등줄기가 섬뜩해졌다. 무릎을 감싸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실렸다. “잘 지냈고?” 비에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느릿느릿 굴러떨어졌다. 궤적을 쫓는 남자의 눈빛이 농밀해졌다. 이연이 고장 난 기계인 양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가 풀었다. 눈동자가 아래로 떨어졌다. “……나 만나는 사람 있어. 결혼할 거고.”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애써 잊고 살아온 과거를 들쑤시지 말아 달라고. “해, 결혼.” “…….” “축의금도 꽂아줘? 애인으로부터.” 말없이 사라진 자신을 찾아다니고 원망할 거란 사실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죄책감과 후회로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다. 한때는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연히 채환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애틋하고 아련한 어느 날의 기억을 쥐고 아무렇지 않게 마주 웃고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잘 지냈냐고. 그동안, 네 생각을 많이 했는데 너도 혹시 그랬느냐고. 무수한 상상 속에서 이토록 비참한 재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연은 구겨진 계약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갑, 권채환. 그리고 을, 서이연. 비 냄새에 섞여 알싸한 연초 향이 맴돌았다. 익숙한 내음이었다.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 더보기#현대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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