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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실낙원

[BL] 실낙원

판타지물, 서양풍, 시대물, 시리어스물, 사건물, 3인칭시점, 강공, 집착공, 연하공, 사랑꾼공, 순정공, 미인수, 연상수, 상처수, 정치/사회/재벌, 재회물, 신분차이, 황제공 ˝나의 달, 나의 숲, 나의 바다˝ 술탄공, 집착공, 연하공 수도사수, 미인수, 연상수 15세기 오스만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동로마 제국)을 함락시키던 때를 배경으로 한 역사 판타지 신파 로맨스 장편소설. 실낙원 소개 우연히 쫓기는 오스만 제국의 소년 나사드를 구해준 비잔틴 제국의 견습 수도사 리하일. 긴 은발과 금은요동을 가진 리하일에게 반한 소년은 “데리러 오겠다”라는 말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그 뒤로 9년이 흐른다. 아련히 소년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만을 간직하고 있던 리하일은 곧 그를 잊지만 소년은 잊지 않는다. 결국 장성해 술탄이 되어 돌아온 나사드는 리하일을 손에 넣기 위해 비잔틴을 함락시키지만 정작 리하일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이교도라 비난하며 나사드를 거부한다. 그러나 오만하고 강압적인 정복자인 술탄에게 어느 순간 그는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데…. <발췌> “이제 위험은 없습니다. 이쪽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차분한 음성이었지만 나사드는 믿을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굳어진 채로 숨을 죽이고 있자 그는 이번엔 좀 더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부상을 입으셨다니 치료를 해야지요. 근위병은 가버렸고, 제게 무기라곤 없습니다. 아까부터 계속 그 곳에 계신 듯 한데 이대로 날이 밝아버리면 돌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달래듯이 차근차근 설득을 하는 그의 태도에 교묘히 동화가 된 나사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숲을 헤치고 한걸음씩 걸어 나가는 동안, 수도사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사드를 불안하지 않게 만들려는 생각인지 두 손을 기도하듯 깍지 껴 앞으로 모으고. 계속되는 출혈로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나사드는 이를 악물고 그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씩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나사드는 긴장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 그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질 것이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그때. 줄곧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나사드는 그 자리에 멈춰 서버렸다. 하얀 월광을 받은 그의 머리카락은 폭포처럼 빛이 났다. 키가 큰 편인 그는 생각했던 것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것 같다. 몸매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옷 때문에 그의 체격을 쉽게 짐작하긴 어려웠지만 상당히 말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두려웠는지 살짝 떨리고 있는 보기 좋은 입술과 부드러운 얼굴선에서 천천히 시선을 올려 마주친 그의 눈동자에 나사드는 눈을 크게 떴다. 푸른 바다와 함께 녹음이 우거진 숲이 그 곳에 있었다. 무수히 아름다운 자들을 보아왔으나 이렇듯 누군가에게 넋을 잃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막연히 ‘아름답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모자란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어린 나사드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한순간 멈췄던 심장이 귓가에서 미친 듯이 뛰어대는 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을 뿐. 멍하니 서있는 나사드를 보자 수도사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아직 어린애잖아.” 제국의 첩자라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리하일은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풀고 웃어버렸다. 열다섯 살도 되지 않았을 것처럼 보이는 사내아이는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그에게 시선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조금 숙인 리하일이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아까도 얘기했지만 난 무기도 없고 누굴 부를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 리하일이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그것을 거칠게 뿌리쳤다. 흑요석같이 새까만 눈동자가 불같이 타오르며 리하일을 노려보았다. “누가 무서워한다는 말이냐, 무례한 놈. 당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라.” 제법 위협적으로 명령하는 그의 태도에 리하일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그것은 곧 재미있다는 얼굴로 변해버렸다. “알았어. 겁먹지 않았다는 거 알겠으니까 상처를 좀 보자.” “감히 내 몸을 보겠다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제법 신분이 높은 사내아이 같았다. 입고 있는 옷은 잠행을 위해서인지 허름해보였지만 음성에서 묻어나는 위압감과 온 몸에 흐르는 고귀함과 우아함은 아무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주 익숙한 듯이 내뱉는 음성에는 박력이 넘쳤다. 하지만 그래봤자 리하일에게는 그저 부상을 입은 아이로 보일 뿐이다. 어느 모로 보나 유리한 건 리하일 쪽이다. 때문에 리하일은 그의 거만한 태도에 화가 치밀기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는 크게 웃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상처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요구대로 무릎을 꿇고 부탁하긴 했지만 얼굴은 계속 웃고 있어서,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리하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기엔 상처가 만만치 않았던지, 소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노라.” “감사합니다.” 리하일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리하일의 하얀 손이 젖은 옷을 들추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피로 흠뻑 젖어있는 옆구리를 보는 순간 리하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심하잖아, 이거. 지혈할 것이 필요하겠어.” “어딜 가려는 거지?” 돌아서서 급히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는 리하일의 손을 그가 낚아챘다. 부상당한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손아귀 힘에 놀라며 리하일이 말했다. “약이 필요해. 붕대도.” “그렇게 날 속이고 위병을 불러오려는 거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럴 생각이었다면 아까 그렇게 했어!” 리하일은 버럭 화를 내며 그의 손을 뿌리치고 급히 가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사드는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나무에 기대앉았다. 자꾸 눈앞이 흐려진다. 출혈이 예상보다 더 심했던 모양이다. 칼리스가 또 잔소리를 해대겠어…. 잠깐 의식을 잃었었던 모양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자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은발의 수도사를 볼 수 있었다. 달빛이 흘러 황홀하게 빛나는 그의 모습에 나사드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이쪽이 꿈인가… 아니면….” 아직 흐릿한 의식으로 중얼거리자 그는 대답대신 나사드의 얼굴을 찰싹 때렸다. “무엄한 놈! 감히 내 얼굴을 때리다니 당장 처형시키겠다!” 분노로 정신이 번쩍 들어 소리쳤으나 그는 전혀 움칠하는 기색 없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일어나 앉을 기운도 없어 보이는데 잘도 나를 죽이겠다 싶지만.” “건방진 놈, 감히 나에게….” “얼마나 대단한 신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도와줬는데 너무 말이 거칠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면 오스만제국에는 고맙다는 말이 없는 건가? 하긴 야만적인 이교도들에겐 감사의 마음 따위 없을 지도. 아니면 아직 어려서 배우질 못했어?” “멋대로 지껄이지 마, 난 어리지 않아. 벌써 열두 살이라고.” “난 열일곱이야. 고작 열두 살인 주제에. 어른인 척 하고 싶으면 기본적인 걸 먼저 지켜.” 나사드는 기가 막혀 그를 노려보았다. “비잔틴의 수도사는 모두 아침마다 기도문을 외우는 대신 말싸움을 하나?” “난 아직 정식 수도사가 아냐. 감사의 말은 언제 할 거지?” 가볍게 일축해버린 리하일을 노려보던 나사드는 어렵게 일어나 앉아 입을 열었다. “내 부상을 치료할 은혜를 베풀었으니 평생의 영광으로 알도록 해라.” 거만한 나사드의 말에 리하일은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열두 살치고는 또래보다 키도 크고 뼈대가 훌륭하다. 리하일 역시 큰 키에 속한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자라면 리하일이 목을 빼서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건장해지겠지. 하지만 아직 나사드는 리하일의 어깨 정도의 키일 뿐이다. 물론 아까 손목을 붙잡혔을 때의 힘이라든가 그가 의식을 잃었던 짧은 시간동안 무심코 봤던 그의 손에 잡힌 굳은살은 그가 나이와 다르게 상당한 무예를 갖추고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그래도 리하일은 나사드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저 강렬한 검은 눈과 마주치면 자신도 모르게 움칠하게 되지만 겁을 먹는 것과는 다르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리하일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저 좀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이를 상대로 언제까지나 말싸움을 하는 것도 우스워 그만 두기로 한 리하일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예, 일생 기억하겠습니다.” 리하일의 존대는 여전히 놀리는 것 같았지만 나사드는 일단 참기로 했다. “수도사도 아닌 주제에 왜 여기 있는 거지?” “절차는 내일 밟을 거야. 사제가 되기 위해서 왔으니까.” “왜 사제가 되려는 거야?” “…상관없잖아.” 리하일의 부드럽던 음성에 한순간 적의가 서렸다. 그러나 나사드는 물러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묻는 말에 대답해. 이유가 뭐지?” 고압적인 그의 말에 리하일은 잠시 불쾌해졌으나 곧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스쳐갈 오스만제국의 아이잖아. 다시 보게 될 일도 없을 거고… 게다가 리하일은 갓 수도원에 온 탓에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이런 밤이라면 더욱 그렇다. 마침내 리하일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죄를 지었어.” “무슨 죄? 사람을 죽였나?” ‘아니’ 하고 리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 태어난 죄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사드는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잘 생긴 눈썹을 찡그렸다. 리하일이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그랬어. 난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애라고. 그런데 태어나 버렸으니까 그 죄를 갚기 위해 사제가 되어 일생동안 수도원에서 용서를 빌어야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마디로 일축해버린 나사드에게 리하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 눈을 봐.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르지?” “그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리하일이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그 증거야. 내가 태어난 죄의 증거. 게다가 머리는 은발이지. 태양이 아니라 달의 빛깔이라고 어머니는 불길해 했어.” 짙은 리하일의 눈동자가 더욱 어두워지는 것을 본 나사드가 강한 말투로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 태어난 것이 죄라니,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대는 아름다워. 나는 지금까지 그대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죄인이 이렇게 아름다울 리가 없지 않은가.” 열성적인 말에 리하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하지만 악마 역시 아주 아름답다고 들었어.” “그대가 악마라면 기꺼이 내 혼을 주겠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어이가 없다기보다는 놀란 얼굴로 서둘러 나사드의 입을 막으려는 리하일을 뿌리치고 나사드는 진지하게 말했다. “진심이야. 그대의 머리카락도, 눈도, 얼굴도, 손도, 모두 아름답다. 단지 눈동자 색이 다르다고 해서 죄라니,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도들은 이상하군.” “어쨌든 말은 고맙게 받아들일게.” 이제 그만하라는 듯이 리하일이 말했으나 나사드는 단념하지 않았다. “이 머리를 자르고 사제가 될 건가?” 안타깝다는 듯이 물으며 나사드가 리하일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허리까지 흘러내린 긴 은발의 머리카락을 허락도 없이 만지는 나사드였지만, 리하일은 그냥 내버려두었다. “응. 오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절차를 전혀 밟지 못했어. 내일 수속을 밟고 나면 그 후에 자르게 되겠지.” “자르지 마.” 리하일이 멈칫하자 나사드는 단호한 음성으로 명령했다. “그대의 머리카락 무게의 열 배, 아니 백 배가 되는 은을 주겠다. 그러니 자르지 마라.” “유감이지만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잘라야 해. 게다가 지금 자르지 않아도 공부가 끝나고 정식으로 사제가 되면 결국 자르게 된다고.” “그렇게까지 사제가 되고 싶어?” “뭐….” 리하일이 처음으로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사드가 리하일의 어깨를 붙잡고 열성적으로 말했다. “하지 마, 그런 건.” 리하일이 깜짝 놀라 눈을 깜박거리자 나사드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만 두는 거다 사제 따위.” “될 수 있을 리가 없다니 무슨 말이 그래. 실례잖아.” 리하일이 버럭 화를 내자 나사드는 진지하게 말했다. “감히 이교도를 수도원에 감춰주고 거짓말까지 한 주제에 사제가 되겠다고?” “너를 도와주느라 그런 거야.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자기 때문에 저지른 일인데 비난을 받다니 어이가 없었다. 리하일이 반박하자 나사드가 물었다. “죄는 죄잖아? 이유가 어떻든.” “물론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고해를 할 테니까.” “고해라니?” “신에게 죄를 고백하는 거야. 물론 직접 빌 수는 없으니까 정식 사제님에게….” “몰라서 묻는 게 아냐.” 나사드는 리하일의 말을 가로막고 멋대로 자신의 말을 했다. “나와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겠다는 얘기잖아? 거짓말을 한 건 그렇게 커다란 죄가 아냐. 문제는 그 뒤라고. 이교도를 감춰주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다니, 파문당할 걸. 아니지, 수도원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벌을 받을 지도 몰라.”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겁을 주는 그의 말들에 리하일이 버럭 화를 내자, 나사드는 진지한 얼굴로 리하일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죄를 내가 가져가지.” 속삭임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나사드의 입술이 리하일의 입술을 덮쳤다. 놀란 리하일은 더더욱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그 사이 나사드의 혀가 리하일의 입술을 가르고 거침없이 안을 점령했다. 피할 곳도 없는 좁은 공간 안에서 리하일은 나사드에게 혀를 붙잡혀 버렸다. 체온보다 뜨거운 혀가 리하일의 입안을 헤집는다. 혀를 얽고 타액을 빨아들였다. 숨이 막힌 리하일이 한껏 입을 벌리자, 나사드의 혀가 기다렸다는 듯이 리하일의 혀 아래쪽을 뒤져 연한 속살을 마음껏 유린했다. “아, 하악, 하악….”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헐떡이며 허물어지자 나사드가 그대로 리하일을 쓰러뜨리고 뜨거운 손으로 그의 목줄기를 더듬었다. 단정하게 맞물려 있는 옷깃에 초조해진 나사드가 그것을 잡아 뜯으려 하자, 리하일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저리 비켜!” “난 이제 알았어.” 나사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밀치려던 리하일의 손을 붙잡아 손바닥에 번갈아 키스를 했다. “그대가 태어난 것은 죄 따위가 아니다. 내 것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거야. 나를 만나고 내게서 사랑받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기가 차서 내뱉는 리하일이었으나 그의 키스는 교묘하게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 증거로 나사드가 혀를 내밀어 리하일의 손가락을 핥자 리하일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들이켰다. 나사드는 타오를 것 같이 정열적인 검은 눈으로 리하일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그게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말 따위는 듣지 마. 내 말만 들어. 그대의 은의 머리칼도,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의 눈동자도, 석류석의 입술도, 모두 나를 위해 알라께서 직접 세공한 살아있는 보석인 거다.” “사람을 보석에 비유하다니, 이교도인 주제에 신을 들먹이면서 말하면 내가 믿을 줄 알고.” 부정하려는 리하일이었으나 나사드는 그의 얼굴을 붙잡아 눈 위에 번갈아 키스를 하며 말했다. “그대의 전부는 내 것이다. 나의 바다, 나의 숲, 나의 달.” “그만 둬….” 리하일이 가늘게 신음하자 나사드는 대답 대신 다시 깊은 키스를 했다. 아까보다는 부드러웠지만 못지않게 정열적인 키스에 아예 넋이 나가버린 듯한 리하일에게, 나사드가 부드럽게 입술을 빨아들이며 물었다. “나의 리마, 그대의 이름을 가르쳐 줘.” 속삭이는 음성에 취해버린 듯 리하일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리하일… 콜로니에….” “성은 필요 없어. 리하일이라. 그대만큼 아름다운 이름이군. 향기가 나는 것 같아. 그대는 나와 함께 간다. 알겠지? 사제 따위는 그만 둬. 정식으로 그대를 데리러 오겠다.” 맹세를 하는 것처럼 리하일의 손등에 번갈아 키스를 한 나사드는, 마음이 급한 듯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당혹스러움이 밀려온 리하일은 그 뒤를 쫓아 일어나 일부러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멋대로 남의 일에 대해서 결정하지 마, 어린애인 주제에.” “말을 삼가라.” 위엄을 갖춘 나사드의 차가운 명령에 리하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나사드는 리하일의 어깨를 끌어당겨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한 후 말했다. “다른 이였다면 당장 혀를 뽑고 옥에 처넣었을 테지만 그대의 죄는 이것으로 용서하지.” “무례하게, 허락도 없이 키스하지 마.” 리하일이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려 하자 나사드는 그것을 잡아채 손바닥에 키스를 했다. “처음이었지, 리하일?”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어. 그대는 내 것이니까. 앞으로도 누구와도 키스하지 마. 그대에게 손을 대는 자는 누구든 용서하지 않겠다.” 어이가 없어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에 나사드는 서둘러 돌아섰다. “말을 한 필 빌리지. 다시 만났을 때 그대의 어느 한 곳이라도 달라진 곳이 있다면 이곳의 사제는 모두 죽이고 수도원은 불태워버리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릴….” “내게 불가능한 일은 없어, 아름다운 리하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사드는 삽시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리하일은 눈을 크게 뜬 채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입술이 타오르는 것 같다. 살짝 더듬어보자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괜히 도와줬어.” 리하일은 낮게 중얼거렸지만 어딘지 힘이 없었다. 심장은 아까부터 주체할 수 없이 격렬하게 뛰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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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실낙원 ZIG /

판타지물, 서양풍, 시대물, 시리어스물, 사건물, 3인칭시점, 강공, 집착공, 연하공, 사랑꾼공, 순정공, 미인수, 연상수, 상처수, 정치/사회/재벌, 재회물, 신분차이, 황제공 ˝나의 달, 나의 숲, 나의 바다˝ 술탄공, 집착공, 연하공 수도사수, 미인수, 연상수 15세기 오스만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동로마 제국)을 함락시키던 때를 배경으로 한 역사 판타지 신파 로맨스 장편소설. 실낙원 소개 우연히 쫓기는 오스만 제국의 소년 나사드를 구해준 비잔틴 제국의 견습 수도사 리하일. 긴 은발과 금은요동을 가진 리하일에게 반한 소년은 “데리러 오겠다”라는 말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그 뒤로 9년이 흐른다. 아련히 소년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만을 간직하고 있던 리하일은 곧 그를 잊지만 소년은 잊지 않는다. 결국 장성해 술탄이 되어 돌아온 나사드는 리하일을 손에 넣기 위해 비잔틴을 함락시키지만 정작 리하일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이교도라 비난하며 나사드를 거부한다. 그러나 오만하고 강압적인 정복자인 술탄에게 어느 순간 그는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데…. <발췌> “이제 위험은 없습니다. 이쪽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차분한 음성이었지만 나사드는 믿을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굳어진 채로 숨을 죽이고 있자 그는 이번엔 좀 더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부상을 입으셨다니 치료를 해야지요. 근위병은 가버렸고, 제게 무기라곤 없습니다. 아까부터 계속 그 곳에 계신 듯 한데 이대로 날이 밝아버리면 돌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달래듯이 차근차근 설득을 하는 그의 태도에 교묘히 동화가 된 나사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숲을 헤치고 한걸음씩 걸어 나가는 동안, 수도사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사드를 불안하지 않게 만들려는 생각인지 두 손을 기도하듯 깍지 껴 앞으로 모으고. 계속되는 출혈로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나사드는 이를 악물고 그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씩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나사드는 긴장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 그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질 것이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그때. 줄곧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나사드는 그 자리에 멈춰 서버렸다. 하얀 월광을 받은 그의 머리카락은 폭포처럼 빛이 났다. 키가 큰 편인 그는 생각했던 것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것 같다. 몸매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옷 때문에 그의 체격을 쉽게 짐작하긴 어려웠지만 상당히 말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두려웠는지 살짝 떨리고 있는 보기 좋은 입술과 부드러운 얼굴선에서 천천히 시선을 올려 마주친 그의 눈동자에 나사드는 눈을 크게 떴다. 푸른 바다와 함께 녹음이 우거진 숲이 그 곳에 있었다. 무수히 아름다운 자들을 보아왔으나 이렇듯 누군가에게 넋을 잃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막연히 ‘아름답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모자란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어린 나사드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한순간 멈췄던 심장이 귓가에서 미친 듯이 뛰어대는 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을 뿐. 멍하니 서있는 나사드를 보자 수도사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아직 어린애잖아.” 제국의 첩자라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리하일은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풀고 웃어버렸다. 열다섯 살도 되지 않았을 것처럼 보이는 사내아이는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그에게 시선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조금 숙인 리하일이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아까도 얘기했지만 난 무기도 없고 누굴 부를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 리하일이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그것을 거칠게 뿌리쳤다. 흑요석같이 새까만 눈동자가 불같이 타오르며 리하일을 노려보았다. “누가 무서워한다는 말이냐, 무례한 놈. 당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라.” 제법 위협적으로 명령하는 그의 태도에 리하일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그것은 곧 재미있다는 얼굴로 변해버렸다. “알았어. 겁먹지 않았다는 거 알겠으니까 상처를 좀 보자.” “감히 내 몸을 보겠다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제법 신분이 높은 사내아이 같았다. 입고 있는 옷은 잠행을 위해서인지 허름해보였지만 음성에서 묻어나는 위압감과 온 몸에 흐르는 고귀함과 우아함은 아무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주 익숙한 듯이 내뱉는 음성에는 박력이 넘쳤다. 하지만 그래봤자 리하일에게는 그저 부상을 입은 아이로 보일 뿐이다. 어느 모로 보나 유리한 건 리하일 쪽이다. 때문에 리하일은 그의 거만한 태도에 화가 치밀기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는 크게 웃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상처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요구대로 무릎을 꿇고 부탁하긴 했지만 얼굴은 계속 웃고 있어서,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리하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기엔 상처가 만만치 않았던지, 소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노라.” “감사합니다.” 리하일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리하일의 하얀 손이 젖은 옷을 들추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피로 흠뻑 젖어있는 옆구리를 보는 순간 리하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심하잖아, 이거. 지혈할 것이 필요하겠어.” “어딜 가려는 거지?” 돌아서서 급히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는 리하일의 손을 그가 낚아챘다. 부상당한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손아귀 힘에 놀라며 리하일이 말했다. “약이 필요해. 붕대도.” “그렇게 날 속이고 위병을 불러오려는 거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럴 생각이었다면 아까 그렇게 했어!” 리하일은 버럭 화를 내며 그의 손을 뿌리치고 급히 가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사드는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나무에 기대앉았다. 자꾸 눈앞이 흐려진다. 출혈이 예상보다 더 심했던 모양이다. 칼리스가 또 잔소리를 해대겠어…. 잠깐 의식을 잃었었던 모양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자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은발의 수도사를 볼 수 있었다. 달빛이 흘러 황홀하게 빛나는 그의 모습에 나사드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이쪽이 꿈인가… 아니면….” 아직 흐릿한 의식으로 중얼거리자 그는 대답대신 나사드의 얼굴을 찰싹 때렸다. “무엄한 놈! 감히 내 얼굴을 때리다니 당장 처형시키겠다!” 분노로 정신이 번쩍 들어 소리쳤으나 그는 전혀 움칠하는 기색 없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일어나 앉을 기운도 없어 보이는데 잘도 나를 죽이겠다 싶지만.” “건방진 놈, 감히 나에게….” “얼마나 대단한 신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도와줬는데 너무 말이 거칠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면 오스만제국에는 고맙다는 말이 없는 건가? 하긴 야만적인 이교도들에겐 감사의 마음 따위 없을 지도. 아니면 아직 어려서 배우질 못했어?” “멋대로 지껄이지 마, 난 어리지 않아. 벌써 열두 살이라고.” “난 열일곱이야. 고작 열두 살인 주제에. 어른인 척 하고 싶으면 기본적인 걸 먼저 지켜.” 나사드는 기가 막혀 그를 노려보았다. “비잔틴의 수도사는 모두 아침마다 기도문을 외우는 대신 말싸움을 하나?” “난 아직 정식 수도사가 아냐. 감사의 말은 언제 할 거지?” 가볍게 일축해버린 리하일을 노려보던 나사드는 어렵게 일어나 앉아 입을 열었다. “내 부상을 치료할 은혜를 베풀었으니 평생의 영광으로 알도록 해라.” 거만한 나사드의 말에 리하일은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열두 살치고는 또래보다 키도 크고 뼈대가 훌륭하다. 리하일 역시 큰 키에 속한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자라면 리하일이 목을 빼서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건장해지겠지. 하지만 아직 나사드는 리하일의 어깨 정도의 키일 뿐이다. 물론 아까 손목을 붙잡혔을 때의 힘이라든가 그가 의식을 잃었던 짧은 시간동안 무심코 봤던 그의 손에 잡힌 굳은살은 그가 나이와 다르게 상당한 무예를 갖추고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그래도 리하일은 나사드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저 강렬한 검은 눈과 마주치면 자신도 모르게 움칠하게 되지만 겁을 먹는 것과는 다르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리하일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저 좀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이를 상대로 언제까지나 말싸움을 하는 것도 우스워 그만 두기로 한 리하일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예, 일생 기억하겠습니다.” 리하일의 존대는 여전히 놀리는 것 같았지만 나사드는 일단 참기로 했다. “수도사도 아닌 주제에 왜 여기 있는 거지?” “절차는 내일 밟을 거야. 사제가 되기 위해서 왔으니까.” “왜 사제가 되려는 거야?” “…상관없잖아.” 리하일의 부드럽던 음성에 한순간 적의가 서렸다. 그러나 나사드는 물러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묻는 말에 대답해. 이유가 뭐지?” 고압적인 그의 말에 리하일은 잠시 불쾌해졌으나 곧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스쳐갈 오스만제국의 아이잖아. 다시 보게 될 일도 없을 거고… 게다가 리하일은 갓 수도원에 온 탓에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이런 밤이라면 더욱 그렇다. 마침내 리하일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죄를 지었어.” “무슨 죄? 사람을 죽였나?” ‘아니’ 하고 리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 태어난 죄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사드는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잘 생긴 눈썹을 찡그렸다. 리하일이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그랬어. 난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애라고. 그런데 태어나 버렸으니까 그 죄를 갚기 위해 사제가 되어 일생동안 수도원에서 용서를 빌어야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마디로 일축해버린 나사드에게 리하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 눈을 봐.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르지?” “그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리하일이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그 증거야. 내가 태어난 죄의 증거. 게다가 머리는 은발이지. 태양이 아니라 달의 빛깔이라고 어머니는 불길해 했어.” 짙은 리하일의 눈동자가 더욱 어두워지는 것을 본 나사드가 강한 말투로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 태어난 것이 죄라니,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대는 아름다워. 나는 지금까지 그대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죄인이 이렇게 아름다울 리가 없지 않은가.” 열성적인 말에 리하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하지만 악마 역시 아주 아름답다고 들었어.” “그대가 악마라면 기꺼이 내 혼을 주겠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어이가 없다기보다는 놀란 얼굴로 서둘러 나사드의 입을 막으려는 리하일을 뿌리치고 나사드는 진지하게 말했다. “진심이야. 그대의 머리카락도, 눈도, 얼굴도, 손도, 모두 아름답다. 단지 눈동자 색이 다르다고 해서 죄라니,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도들은 이상하군.” “어쨌든 말은 고맙게 받아들일게.” 이제 그만하라는 듯이 리하일이 말했으나 나사드는 단념하지 않았다. “이 머리를 자르고 사제가 될 건가?” 안타깝다는 듯이 물으며 나사드가 리하일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허리까지 흘러내린 긴 은발의 머리카락을 허락도 없이 만지는 나사드였지만, 리하일은 그냥 내버려두었다. “응. 오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절차를 전혀 밟지 못했어. 내일 수속을 밟고 나면 그 후에 자르게 되겠지.” “자르지 마.” 리하일이 멈칫하자 나사드는 단호한 음성으로 명령했다. “그대의 머리카락 무게의 열 배, 아니 백 배가 되는 은을 주겠다. 그러니 자르지 마라.” “유감이지만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잘라야 해. 게다가 지금 자르지 않아도 공부가 끝나고 정식으로 사제가 되면 결국 자르게 된다고.” “그렇게까지 사제가 되고 싶어?” “뭐….” 리하일이 처음으로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사드가 리하일의 어깨를 붙잡고 열성적으로 말했다. “하지 마, 그런 건.” 리하일이 깜짝 놀라 눈을 깜박거리자 나사드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만 두는 거다 사제 따위.” “될 수 있을 리가 없다니 무슨 말이 그래. 실례잖아.” 리하일이 버럭 화를 내자 나사드는 진지하게 말했다. “감히 이교도를 수도원에 감춰주고 거짓말까지 한 주제에 사제가 되겠다고?” “너를 도와주느라 그런 거야.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자기 때문에 저지른 일인데 비난을 받다니 어이가 없었다. 리하일이 반박하자 나사드가 물었다. “죄는 죄잖아? 이유가 어떻든.” “물론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고해를 할 테니까.” “고해라니?” “신에게 죄를 고백하는 거야. 물론 직접 빌 수는 없으니까 정식 사제님에게….” “몰라서 묻는 게 아냐.” 나사드는 리하일의 말을 가로막고 멋대로 자신의 말을 했다. “나와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겠다는 얘기잖아? 거짓말을 한 건 그렇게 커다란 죄가 아냐. 문제는 그 뒤라고. 이교도를 감춰주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다니, 파문당할 걸. 아니지, 수도원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벌을 받을 지도 몰라.”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겁을 주는 그의 말들에 리하일이 버럭 화를 내자, 나사드는 진지한 얼굴로 리하일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죄를 내가 가져가지.” 속삭임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나사드의 입술이 리하일의 입술을 덮쳤다. 놀란 리하일은 더더욱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그 사이 나사드의 혀가 리하일의 입술을 가르고 거침없이 안을 점령했다. 피할 곳도 없는 좁은 공간 안에서 리하일은 나사드에게 혀를 붙잡혀 버렸다. 체온보다 뜨거운 혀가 리하일의 입안을 헤집는다. 혀를 얽고 타액을 빨아들였다. 숨이 막힌 리하일이 한껏 입을 벌리자, 나사드의 혀가 기다렸다는 듯이 리하일의 혀 아래쪽을 뒤져 연한 속살을 마음껏 유린했다. “아, 하악, 하악….”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헐떡이며 허물어지자 나사드가 그대로 리하일을 쓰러뜨리고 뜨거운 손으로 그의 목줄기를 더듬었다. 단정하게 맞물려 있는 옷깃에 초조해진 나사드가 그것을 잡아 뜯으려 하자, 리하일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저리 비켜!” “난 이제 알았어.” 나사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밀치려던 리하일의 손을 붙잡아 손바닥에 번갈아 키스를 했다. “그대가 태어난 것은 죄 따위가 아니다. 내 것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거야. 나를 만나고 내게서 사랑받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기가 차서 내뱉는 리하일이었으나 그의 키스는 교묘하게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 증거로 나사드가 혀를 내밀어 리하일의 손가락을 핥자 리하일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들이켰다. 나사드는 타오를 것 같이 정열적인 검은 눈으로 리하일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그게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말 따위는 듣지 마. 내 말만 들어. 그대의 은의 머리칼도,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의 눈동자도, 석류석의 입술도, 모두 나를 위해 알라께서 직접 세공한 살아있는 보석인 거다.” “사람을 보석에 비유하다니, 이교도인 주제에 신을 들먹이면서 말하면 내가 믿을 줄 알고.” 부정하려는 리하일이었으나 나사드는 그의 얼굴을 붙잡아 눈 위에 번갈아 키스를 하며 말했다. “그대의 전부는 내 것이다. 나의 바다, 나의 숲, 나의 달.” “그만 둬….” 리하일이 가늘게 신음하자 나사드는 대답 대신 다시 깊은 키스를 했다. 아까보다는 부드러웠지만 못지않게 정열적인 키스에 아예 넋이 나가버린 듯한 리하일에게, 나사드가 부드럽게 입술을 빨아들이며 물었다. “나의 리마, 그대의 이름을 가르쳐 줘.” 속삭이는 음성에 취해버린 듯 리하일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리하일… 콜로니에….” “성은 필요 없어. 리하일이라. 그대만큼 아름다운 이름이군. 향기가 나는 것 같아. 그대는 나와 함께 간다. 알겠지? 사제 따위는 그만 둬. 정식으로 그대를 데리러 오겠다.” 맹세를 하는 것처럼 리하일의 손등에 번갈아 키스를 한 나사드는, 마음이 급한 듯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당혹스러움이 밀려온 리하일은 그 뒤를 쫓아 일어나 일부러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멋대로 남의 일에 대해서 결정하지 마, 어린애인 주제에.” “말을 삼가라.” 위엄을 갖춘 나사드의 차가운 명령에 리하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나사드는 리하일의 어깨를 끌어당겨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한 후 말했다. “다른 이였다면 당장 혀를 뽑고 옥에 처넣었을 테지만 그대의 죄는 이것으로 용서하지.” “무례하게, 허락도 없이 키스하지 마.” 리하일이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려 하자 나사드는 그것을 잡아채 손바닥에 키스를 했다. “처음이었지, 리하일?”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어. 그대는 내 것이니까. 앞으로도 누구와도 키스하지 마. 그대에게 손을 대는 자는 누구든 용서하지 않겠다.” 어이가 없어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에 나사드는 서둘러 돌아섰다. “말을 한 필 빌리지. 다시 만났을 때 그대의 어느 한 곳이라도 달라진 곳이 있다면 이곳의 사제는 모두 죽이고 수도원은 불태워버리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릴….” “내게 불가능한 일은 없어, 아름다운 리하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사드는 삽시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리하일은 눈을 크게 뜬 채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입술이 타오르는 것 같다. 살짝 더듬어보자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괜히 도와줬어.” 리하일은 낮게 중얼거렸지만 어딘지 힘이 없었다. 심장은 아까부터 주체할 수 없이 격렬하게 뛰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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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표준도서번호(ISBN) 9791-16-100-0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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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댓글 - [BL]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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