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의 여우볕
ㅡ여우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암수한몸이다. 여우는 사내였다가도 계집이었다. 계집이다가도 사내였다. 간을 빼앗아 먹은 인간 누구에게나 흡수되어 둔갑의 탈을 쓸 수 있는 묘기에 능했다.
ㅡ여우는 강원의 해신이 되었다가 전라의 동제가 되었다가 함흥의 산제가 되었다. 평안의 산신이 되었다가 또 한양의 정월이 되기도 했다. 팔도의 무녀들이 죽었지만, 경상의 만월은 살았다. 함안의 이씨 성을 가진 농사꾼, 이종백의 장녀, 만월이었다.
ㅡ여우굿이 있기 오일을 거스른 해시에 이만월은 마지막으로 여우에게 복숭아 하나를 건넸다.
ㅡ인간 흉내에 능한 여우는 그것을 맛있게 베어 물며 달도 없는 어두운 용화양강의 산 나무 아래에서 미소 지었다. 그때 여우는 한양의 절세로 소문 자자한 무녀, 정월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ㅡ여우 굿을 벌인 그날 굿판에는 이만월 혼자뿐이었다. 여우는 죽은 자를 움직여 산 자의 흉내를 낼 수 있게 했다. 그들은 모두 기괴한 각시춤을 추었다.
ㅡ함안 이 씨, 이종백의 유언대로 무녀의 삶을 내려놓은 이종백의 장녀 이만월이 경산 고씨, 소화와 혼약을 맺은 날, 여우가 이만월을 찾아왔다. 그때 여우는 고소화의 얼굴을 하고, 이만월의 서방 짓을 흉내 냈다.
운채서를 쓴 이만월의 여우 요괴 기록 중.
***
긴 세월을 불사한 여우는 인간의 껍데기만 흡수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 나아가 어미의 모정까지 섭취할 만큼 똑똑했다.
주백현의 뜨거운 입술이 앙증맞게 솟은 젖꼭지를 꽉 빨아 물었다.
“…내가 섹스, 하고 싶어지면 어떡해?”
“뭘 어떡해. 자기 성 기능 존나 정상이라는 건데 칭찬해 줘야지.”
“…그럼 네 성 기능은 어디 고장났어?”
“말넘심. 그게 아작 났으면, 자기 젖 빨아 줄 때마다 내가 좆을 세울까?”
그래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내 몸 위로 기어오르는 이 남자가 주백현인지.
“내 형하고는 무슨 사이였어요?”
한동안은 책상에 엎어져 개처럼 엉덩이만 쳐든 상태로 쑤셔졌다.
“아. 미안해요. 보지가 이뻐서. 내 집에 씨발 이런 게 있는데 안 비벼주면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한 손으로 여자의 음부를 들먹들먹 흔들어놓으면서 한 손은 비싼 시계와 커프스링크로 잘 꾸며놓았다. 신사와 잡배의 이미지를 모두 갖춘 양극 간의 모순에 웃음이 났다.
이선하 같지 않은 이선하인지.
“우리 아빠, 뻘, 이런 건, 아니, 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랐다.
중차대한 결과의 종류에 따라 치러야 하는 보수도 커졌다.
“어, 어르신…이라 부를까요?”
그냥 보기에도 고상한 남자였다. 품격마저 고결할 것 같은 남자는 대답하는 얼굴조차 우아했다.
“여보는 어때요.”
기태경인지.
“100년 전의 나는 조실부모한 갓난쟁이 기생의 서방이었고, 또 그 100년 전에는 병판 장녀의 지게꾼이었단다. 그 100년 전에는 개백정의 데릴사위였고, 더 그 100년 전에는 화장, 조상춘의 독녀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우는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의 말 속에는 그것의 기묘한 본질이 숨어 있었다.
“근데 싫은 게 어디 있어. 응? 너는 나를 연모했어.”
기조.
수컷.
틀림없이 그것의 근간은 사내였다.
“나는 지상의 것을 존중해. 신명의 배잉을 축수하고, 기원한단다. 내가 자기를 신으로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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