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접
사내들은 다 죽고 여자들만 살아남은 마을이었다.
고립된 마을, 이미 경수가 끊어진 여자들.
그 사이에서 재령은 단 한 명의 어린 계집이었다.
마을의 핏줄을 이어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계집 아이.
사람들은 재령이 첫 월경을 시작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재령이 마침내 열 여섯 살에 첫 월경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먼 곳에서 씨를 넣어줄 사내를 모셔왔다.
이 마을의 핏줄을 이을 여자에게 씨를 줄 의무를 가진 사내의 이름은 경왕 청명이었다.
오래 전 이 마을의 사내들을 몰살시켰다는 이유로 경왕부의 장자에게 내려진 의무는 마을의 핏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씨를 줘야 하는 것이었다.
마을 여자들의 요청으로 오래 전 경왕부가 사내들을 몰살한 해루부 나루부에 도착한 경왕 청명.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막 초경이 시작된 어린 계집아이 재령이었다.
[무서우냐?]
초야를 치러야 하는 동굴 안에서 청명은 두려움에 떠는 재령을 가엾게 생각하고.
[네가 지금보다 더 크면 그때 의무를 다하마.]
차마 어린 아이를 건드릴 수 없었던 청명은 초야를 치른 척, 제 팔 안쪽을 칼로 베어 피를 내고 그 피로 초야의 흔적을 만든 다음 재령을 두고 돌아간다.
시간이 지나도 재령이 임신을 하지 않자 마을 여자들은 첫 번째 초야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 년 후, 다시 청명이 나루부에 찾아온다.
[조금 컸구나. 하지만 아직 더 자라야겠다.]
이번에도 청명은 재령과 밤새 이야기만 나눌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간다.
그렇게 다섯 해가 지난다.
그때까지도 마을 여자들은 재령이 운이 나빠 임신을 못한다고만 여겼을 뿐 청명이 재령을 취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스물 한 살이 된 재령은 청명이 오는 날을 기다린다.
이제 자신은 다 컸고 청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다섯 해 동안 일년에 한 번 청명을 만나며 재령은 그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다.
자신이 그의 아내가 될 수는 없지만 그가 자신의 유일한 사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적어도 그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것만 의지하고 기다려왔던 재령.
그런데 약속한 날이 되었을 때 나루부를 찾아온 것은 청명이 아닌 다른 사내였다.
[내 형님이 죽었으니 내가 대신 의무를 치를 것이다.]
나루부를 찾아온 사내는 청명의 동생이자 새로운 경왕이 된 백우였다.
원치 않았던 결과였다.
하지만 거부할 권한이 재령에게는 없었다.
청명만 기다려왔던 재령은 백우와 하룻밤 정을 통하고 그의 씨를 몸에 받게 된다.
그리고 그날 새벽, 재령은 불타는 나루부 마을을 보게 되고 마을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몰살한 것이 바로 백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려움에 질린 재령은 도망치려고 하지만 이내 백우에게 잡히고 만다.
[나는 형님의 것을 다 물려받았으니 너도 이제 내 것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내게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백우에게 사로잡힌 재령.
그리고 그와 함께 경왕부로 가게 된 재령은 그곳에서 청명을 죽인 것이 백우라는 소문을 듣게 된다.
욕심에 이끌려 형을 죽인 사내.
그리고 자신을 더럽힌 사내.
재령의 복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 사내를 죽이자.
청명의 복수를 하자.
그리고 자유를 손에 넣자.
그때부터 재령은 백우를 죽일 기회만 노리게 된다.
닫기
작품댓글 - 교접
로그인 후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